20090626-20090701
Posted 2009/07/03 13:45
26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알바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계속 마이클 잭슨 노래만 나오는 거다. 그냥 특집인가보다 했는데 문세형님의 코멘트에 깜짝. 그래도 뭐랄까, 앙금처럼 남는 안타까움은 없다. 그래도 그가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젊음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뜬금없이 '마이클 잭슨 죽었어요?'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 거 같다고, 라디오에서도 계속 마이클 잭슨 노래만 나온다고 했더니 '좋아했는데…'하고 중얼거리고는 거스름돈을 챙겨 나가셨다. 그 전까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손님이 간 순간 굉장히 울컥했다.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선 더 행복하세요.
그리고 별개로,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고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히트한 노래를 부른 사람. 하지만 그의 죽음은 황금시간대의 뉴스에서 톱기사였다. 그건 물론 마이클 잭슨의 힘이라거나 노래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마이클 잭슨이 그 시간에 거기서 태어나 자란 운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재의 파장을 더 크게 키워줄 수 있는 나라와 언론과 자본과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천재일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어느 시점부턴가 천재가 나오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마이클 잭슨은 1958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이 된 것이다.
간만에 먹은 수박바는 맛있었고, 1100원짜리 핫바는 조금 불량식품 스멜~이 났지만 먹을 만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무엇을 했던가? 벌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몹시 잘 잊는 것은, 뇌가 지금 시대에 맞게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가치가 없는가.
27
역시 알바하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종종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나왔다. 중학교 때 간부수련회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개사해서 조 노래를 만들었던 게 기억난다. you are not alone이었다. 그리고 '삐레' 오빠도 있었다. 그 땐 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beat it!이었지. 생각보다 많이 닿아 있었구나.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를 보면서 테오 피디에게 무한 감사를 느끼고, 찌롱이에게 무한 애정을 느꼈으며(난 정말 노홍철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자를 먹었다. 다음 달 방값이 안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풍요로워서 샐러드에, 가격이 좀 더 비싼 씬으로 시켰다. 도미노 피자 올라 스페인이었던가. 매웠지만 맛있었다. 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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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알바였다. 사장님은 방학 끝나고라든가 또 할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고 나도 봐서 연락드리겠다고 했지만 아마 앞으로 내가 거기서 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알바 끝났다는 사실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지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단어가 갖는 무게는 꽤나. 3개월이면 그렇게 긴 기간도 아니고, 짧다기엔 그렇지도 않은 기간이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앞으로 영원히 못 보고 연락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내게서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게 아닐까, 아니면 단지 언젠간 만날 수도 있다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가능성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 시골에서 원주로 전학올 때는 안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ㅇㅈ이와 전화를 하면서, 원주 시내의 불빛들을 보며 울었던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저녁은 기억난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식에서 선생님과 포옹할 때 눈물이 났던 것도. 어떤 때는 죽는 것도 아닌데 이별에 너무 무게를 두는 것에 냉정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런데도 내가 때때로 눈물을 흘린 건 '당신과 헤어져서 앞으로'가 아니라 '돌아올 수 없이 이미 지나버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지난 시간은 '서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의 것이었던 듯. 지금 글을 적으면서 좀, 복잡한 기분이다.
거기 등록되어 있는 나의 신상정보를 지우고 오려고 했는데 까먹고 그냥 와버렸다.
과외학생 책을 새로 샀다. 저녁도 같이 먹었다. 오므라이스 양이 꽤 많았는데, 남김 없이 먹어치우고 내 위가 꽤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빈말이 아니고 살이 엄청 쪘다. 하긴 작년에 비해 6~7kg 정도의 고깃덩어리가 온몸에 얇게 분포해 있는 셈이니까.
과외가 끝나고 돌아와서 짐을 쌌다. 생각보다 짐이 없었다. 단지 잃어버린 흰색 퓨마 트레이닝복 바지와 아디다스 양말 한 짝이 아쉬울 뿐. 젠장, 아끼던 거였는데. 2006년에 요가 학원에 두고 온 회색 반팔 티셔츠가 생각난다. 집까지 가는 동안 책이 구겨지지 않도록 옷가지와 두루마리 휴지로 책을 감싸 넣었다. 서울 와서 15만원 어치 책을 사가지고 다 읽은 건 한 권 뿐이구만. 짐 싸다가 목말라서 아이스크림 겸 튀김 겸 먹으려고 나왔는데, 11시가 지난 시각이라 용산분식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을 장식했어야 하는데 아쉽군.
29
느즈막히 일어났다. 사실 7신가 8시쯤 하숙집 앞에 서 있던 대한통운 차 시동걸리는 소리(로 추측되는) 듣고 잠깐 깼었는데, 왠지 일찍 일어나면 손해보는 느낌이라서 도로 잤다. 결국 11시에 일어나서 짐 마저 싸고. 테이핑 새로 하고. 침대 부서진 거(...) 매트리스 들고 조립하고. 쓰레기 버리고. 우체국 택배에 전화해서 부르고. 택배 아저씨가 언제쯤 올까 룸메님과 내기하면서 누워서 노닥거렸다. 몹시 더웠다. 피부염 때문에 한동안 못 입던 스키니를 입었는데 정말, 정말, 정말 살이 쪘다. 보기 나쁜 건 둘째치고 거동이 불편해서 아휴.
은근하신 성함을 가진 택배 아저씨는 정말 친절했고, 상큼하게 열쇠를 반납하고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장마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해가 쨍쨍했다. 언제나 '낮'은 나에게 동경의 시간이다. 동경이라는 단어가 알맞지 않은 것 같은데, 음, 부유하고 있는? 동화 같은? 현실 같지 않은? 모르겠다. 신문사에서도 토요일 낮에 아점 먹으러 나와서 샌드프레소라든가로 가는 그 햇살 비치는 대낮의 도로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 안에 들어갈 말을 찾기 어렵다. 가끔은 시간이 약간 멈춘 것 같고 오래된 즐거운 추억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이수역에서 지하철을 반대로 갈아타는 둥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에서 냉면을 먹고, 룸메님과 헤어졌다. 5개월 간의 시한부 룸메였고 또 원래부터 친구였지만,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살았던 사람 치곤 뭔가 담백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해도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내가 마구 연락을 하는 그런 성격도 아닌지라, 좀 아쉬운 느낌?
7월이 가기 전에 꼭 절정인들도 만나야겠다. 애타게까진 아니어도, 어쨌든 내가 '나를 잊었나요' 노래를 포스팅할 정도로 보고싶어하는 파이낸셜은 소재 불명이다. 보내지 않은 편지가 세 통이나(그 중 하나는 엽서지만) 있는데. 내 방명록에 글을 남긴 사람들도 내가 몇 주가 넘도록 대답하지 않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렇다면 난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난 김에 악어 싸이를 가보니 주소가 있더군. 늦기 전에 편지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서 간만에 쌀밥을 먹었다. 역시 집은 현관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우주다. 전혀 다른 공기와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30
엄마는 밥을 안 줘. 쳇. 엄마가 왜 엄만데!
치과에 들렀다 농협에 들렀다 탁구슨생을 만나 우리은행에 갔다가, 헌혈하고(탁구슨생만), 탁구를 쳤다. 달거리 중인데다(참 생리통이랄 게 전~혀 없었다. 우왕ㅋ굳ㅋ) 덥기까지 해서 짜증 게이지가 우주 끝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탁구대 바로 양 옆 탁구대에서 사람들이 치고 있으면 그것도 싫고. 아무튼 그래서 분노에 찬 덕분에 일찍 탁구 접고 놀았다. 롯데마트에서 감자면 사가지고 슨생네 집에 감. 샐러드 먹고 싶었는데 왜 없냐… 라면 끓여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쁘띠첼 먹고 누워서 오지호가 나온 무릎팍 도사를 보다가 시간이 늦은지라 고홈. 적어놓고 보니 정말 아무 것도 하는 거 없이 먹기만 했는데도 10시가 돼서 집에 돌아왔구나. 암튼 또 생각난 김에 워드프로세서 셤 신청하고. 간만에 네이트온에서 친구들하고 대화 작렬해 주시고. 일찍 끌 생각이었는데 대화하는 걸 엄마가 보더니 재밌어해서 제법 길어졌다.
컴퓨터를 끄고 나오니 빗소리가 시원했다. 조금 설렜다. 잠이 안 와서, 책을 좀 읽었다.
1
근두운님 탄신일 감축드리옵니다.
원래 야구 보러 목동 가려고 했는데 전날부터 속이 안 좋아서 관뒀다. 안 좋은거야 견딜만 한데 하루 밤 샐 거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서. 확실히 몸이 노쇠했다. 이게 다 ㅇㅅㅊㅊ때문이다. 까먹고 원주에 하숙집 열쇠를 들고 와서, 등기로 부쳤다. 우체국 시원하고 좋더라. 혈압은 87에 48이었나. 이틀 연속으로 최고혈압은 80 미만, 최저혈압은 50 미만 기록. 저혈압인 게 왠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심부담이 정상치 미만이어서(5900대) 이게 좀 걱정이 됐다. 저혈압이라도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는데. 하지만 키는 좀 컸다.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쟀을 때보다 1.2cm 자랐음. 이 속도면 중 2 이후로 매년 0.5~6cm 꾸준히 자라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때보다 고 3 때 4cm 컸으니까. 탁구슨생도 컸다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거기 키 재는 기계가 좀 크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리고 역시 탁구슨생과 탁구 크리.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내리 다 져버려서, 전날에 이어 탕수육, 야구비, 다음 탁구비, 아이스크림을 사게 생겼다. 확실히 내가 못됐다고 느끼는 점은, 내가 지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거다… 관리가 안 될 정도는 아닌데 뭔가 내가 굳는 게 느껴지니까 상대방이 알아챌까봐 그게 좀 신경쓰인다. '삐진' 상태가 될까봐. 아마 어렸을 때의 자존심이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승부욕을 공부에 썼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하지만 탁구의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데다 즐겁게 하는 거니까 더 지고 싶지 않은 거라고… 아무튼 삐지기 싫다. 삐지는 거 자체가 싫다기보단 상대방이 내가 삐졌다고 생각하는 그 상황이 싫은 거.
배스킨에서 아이스크림 사고, 엄마가 마늘하고 파 사오래서 6시쯤 설렁설렁 들어가는데, 탁구슨생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과적으로 우리집 앞에서 돌아감. 자주 바래다주긴 하는데 내가 좀 우리집에 가자고 고집을 많이 부려서 미안했다.
음, 아니 미안한 건 둘째치고 퍼뜩 내가 왜 얘를 이렇게 집에 데려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한 번 응석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면 끝이 없어서─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 때 놀고 가자고 반 친구 ㅇㅅㅎ를 붙잡고 십수분동안 늘어졌던 기억은 그 미안함 때문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방에게 폐가 되는 수준이다. 이건 좀 고민도 많이 하고 죽 썰을 풀어야 그나마 정리가 될 것 같은데, 지금 대강 생각하기론 탁구슨생이 어느 순간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결론? 최근부터는 좀 짜증을 내기도 하고. 확실히 짜증을 표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정말 탁구슨생에게 맘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 같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얘랑 연애할 것도 아니고. yh라든가 룸메님이라든가 크국에게는 내가 무언가(내가 원하는 바)를 이렇게 끈덕지게 조르는 법이 없었는데, 좀 다른 유형으로 벽을 허문 것 같아서 그게 두려운 걸지도. 그래서 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난 참 인간관계에서 답이 없는 모양이다.
2
과외 때문에 서울. 겸사겸사 크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상경. 타이밍 좋게 이수역 열차칸에서 딱 만났다. 버스 타고 올라가는 동안 비도 오고 해도 나고, 날씨가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차마고도전을 보려고 했던 것데 파라오와 미라전도 좀 땡겨서 티켓을 끊었다.
라고 쓰다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 탁구 치러 가야지. 뿌우.
일상 포스팅은 이따 이어서★
마이클 잭슨이 죽었다. 알바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계속 마이클 잭슨 노래만 나오는 거다. 그냥 특집인가보다 했는데 문세형님의 코멘트에 깜짝. 그래도 뭐랄까, 앙금처럼 남는 안타까움은 없다. 그래도 그가 어마어마한 업적을 이룰 수 있을 만큼의 젊음은 충분히 누렸다고 생각했으니까… 아무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한 손님이 뜬금없이 '마이클 잭슨 죽었어요?'라고 하는 거다. 그래서 그런 거 같다고, 라디오에서도 계속 마이클 잭슨 노래만 나온다고 했더니 '좋아했는데…'하고 중얼거리고는 거스름돈을 챙겨 나가셨다. 그 전까진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그 손님이 간 순간 굉장히 울컥했다.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에선 더 행복하세요.
그리고 별개로,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이란 나라가 갖고 있는 힘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일면식도 없고 심지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히트한 노래를 부른 사람. 하지만 그의 죽음은 황금시간대의 뉴스에서 톱기사였다. 그건 물론 마이클 잭슨의 힘이라거나 노래의 힘 때문이기도 하지만… 또 마이클 잭슨이 그 시간에 거기서 태어나 자란 운명 때문이기도 하지만… 천재의 파장을 더 크게 키워줄 수 있는 나라와 언론과 자본과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언제나 그런 것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천재일거라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리고 어느 시점부턴가 천재가 나오기 점점 더 힘들어지는 세상이 되었다고도 생각했다. 어쨌든 마이클 잭슨은 1958년에 태어났기 때문에 마이클 잭슨이 된 것이다.
간만에 먹은 수박바는 맛있었고, 1100원짜리 핫바는 조금 불량식품 스멜~이 났지만 먹을 만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무엇을 했던가? 벌써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몹시 잘 잊는 것은, 뇌가 지금 시대에 맞게 변화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너무 많은 것들이 있다. 어떤 것이 중요하고 어떤 것이 가치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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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알바하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종종 마이클 잭슨의 노래가 나왔다. 중학교 때 간부수련회에서 마이클 잭슨의 노래를 개사해서 조 노래를 만들었던 게 기억난다. you are not alone이었다. 그리고 '삐레' 오빠도 있었다. 그 땐 뭔지도 몰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beat it!이었지. 생각보다 많이 닿아 있었구나.
무한도전 여드름 브레이크를 보면서 테오 피디에게 무한 감사를 느끼고, 찌롱이에게 무한 애정을 느꼈으며(난 정말 노홍철 같은 사람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피자를 먹었다. 다음 달 방값이 안 나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풍요로워서 샐러드에, 가격이 좀 더 비싼 씬으로 시켰다. 도미노 피자 올라 스페인이었던가. 매웠지만 맛있었다. 아, 배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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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알바였다. 사장님은 방학 끝나고라든가 또 할 생각 있으면 연락하라고 하셨고 나도 봐서 연락드리겠다고 했지만 아마 앞으로 내가 거기서 일할 일은 없을 것이다. 그냥 알바 끝났다는 사실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까 지금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까 그 단어가 갖는 무게는 꽤나. 3개월이면 그렇게 긴 기간도 아니고, 짧다기엔 그렇지도 않은 기간이었다. 늘 생각하는 거지만 앞으로 영원히 못 보고 연락도 되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은 내게서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게 아닐까, 아니면 단지 언젠간 만날 수도 있다는 미약하기 그지없는 가능성 때문에 슬퍼하지 않을 수 있는 건가. 시골에서 원주로 전학올 때는 안 울었던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ㅇㅈ이와 전화를 하면서, 원주 시내의 불빛들을 보며 울었던 초등학교 5학년 어느 날 저녁은 기억난다. 그리고 중학교 졸업식에서 선생님과 포옹할 때 눈물이 났던 것도. 어떤 때는 죽는 것도 아닌데 이별에 너무 무게를 두는 것에 냉정했던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그런데도 내가 때때로 눈물을 흘린 건 '당신과 헤어져서 앞으로'가 아니라 '돌아올 수 없이 이미 지나버려서' 그랬던 것 같다. 그 지난 시간은 '서로'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나의 것이었던 듯. 지금 글을 적으면서 좀, 복잡한 기분이다.
거기 등록되어 있는 나의 신상정보를 지우고 오려고 했는데 까먹고 그냥 와버렸다.
과외학생 책을 새로 샀다. 저녁도 같이 먹었다. 오므라이스 양이 꽤 많았는데, 남김 없이 먹어치우고 내 위가 꽤 커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빈말이 아니고 살이 엄청 쪘다. 하긴 작년에 비해 6~7kg 정도의 고깃덩어리가 온몸에 얇게 분포해 있는 셈이니까.
과외가 끝나고 돌아와서 짐을 쌌다. 생각보다 짐이 없었다. 단지 잃어버린 흰색 퓨마 트레이닝복 바지와 아디다스 양말 한 짝이 아쉬울 뿐. 젠장, 아끼던 거였는데. 2006년에 요가 학원에 두고 온 회색 반팔 티셔츠가 생각난다. 집까지 가는 동안 책이 구겨지지 않도록 옷가지와 두루마리 휴지로 책을 감싸 넣었다. 서울 와서 15만원 어치 책을 사가지고 다 읽은 건 한 권 뿐이구만. 짐 싸다가 목말라서 아이스크림 겸 튀김 겸 먹으려고 나왔는데, 11시가 지난 시각이라 용산분식이 문을 닫았다. 마지막을 장식했어야 하는데 아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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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즈막히 일어났다. 사실 7신가 8시쯤 하숙집 앞에 서 있던 대한통운 차 시동걸리는 소리(로 추측되는) 듣고 잠깐 깼었는데, 왠지 일찍 일어나면 손해보는 느낌이라서 도로 잤다. 결국 11시에 일어나서 짐 마저 싸고. 테이핑 새로 하고. 침대 부서진 거(...) 매트리스 들고 조립하고. 쓰레기 버리고. 우체국 택배에 전화해서 부르고. 택배 아저씨가 언제쯤 올까 룸메님과 내기하면서 누워서 노닥거렸다. 몹시 더웠다. 피부염 때문에 한동안 못 입던 스키니를 입었는데 정말, 정말, 정말 살이 쪘다. 보기 나쁜 건 둘째치고 거동이 불편해서 아휴.
은근하신 성함을 가진 택배 아저씨는 정말 친절했고, 상큼하게 열쇠를 반납하고 캐리어를 끌고 나왔다. 장마가 온다고 해서 걱정했는데 해가 쨍쨍했다. 언제나 '낮'은 나에게 동경의 시간이다. 동경이라는 단어가 알맞지 않은 것 같은데, 음, 부유하고 있는? 동화 같은? 현실 같지 않은? 모르겠다. 신문사에서도 토요일 낮에 아점 먹으러 나와서 샌드프레소라든가로 가는 그 햇살 비치는 대낮의 도로가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이 '~' 안에 들어갈 말을 찾기 어렵다. 가끔은 시간이 약간 멈춘 것 같고 오래된 즐거운 추억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이수역에서 지하철을 반대로 갈아타는 둥 우여곡절 끝에, 터미널에서 냉면을 먹고, 룸메님과 헤어졌다. 5개월 간의 시한부 룸메였고 또 원래부터 친구였지만, 같이 살을 부대끼고 살았던 사람 치곤 뭔가 담백하기 그지없었던 것 같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해도 좋았을 것을. 그렇다고 내가 마구 연락을 하는 그런 성격도 아닌지라, 좀 아쉬운 느낌?
7월이 가기 전에 꼭 절정인들도 만나야겠다. 애타게까진 아니어도, 어쨌든 내가 '나를 잊었나요' 노래를 포스팅할 정도로 보고싶어하는 파이낸셜은 소재 불명이다. 보내지 않은 편지가 세 통이나(그 중 하나는 엽서지만) 있는데. 내 방명록에 글을 남긴 사람들도 내가 몇 주가 넘도록 대답하지 않았을 때 이런 느낌이었을까, 그렇다면 난 정말 몹쓸 짓을 하고 있었구나. 생각난 김에 악어 싸이를 가보니 주소가 있더군. 늦기 전에 편지를 써야 겠다고 생각했다.
집에 도착해서 간만에 쌀밥을 먹었다. 역시 집은 현관문으로 연결되어 있는 다른 우주다. 전혀 다른 공기와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르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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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밥을 안 줘. 쳇. 엄마가 왜 엄만데!
치과에 들렀다 농협에 들렀다 탁구슨생을 만나 우리은행에 갔다가, 헌혈하고(탁구슨생만), 탁구를 쳤다. 달거리 중인데다(참 생리통이랄 게 전~혀 없었다. 우왕ㅋ굳ㅋ) 덥기까지 해서 짜증 게이지가 우주 끝까지 차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탁구대 바로 양 옆 탁구대에서 사람들이 치고 있으면 그것도 싫고. 아무튼 그래서 분노에 찬 덕분에 일찍 탁구 접고 놀았다. 롯데마트에서 감자면 사가지고 슨생네 집에 감. 샐러드 먹고 싶었는데 왜 없냐… 라면 끓여먹고 아이스크림 먹고 쁘띠첼 먹고 누워서 오지호가 나온 무릎팍 도사를 보다가 시간이 늦은지라 고홈. 적어놓고 보니 정말 아무 것도 하는 거 없이 먹기만 했는데도 10시가 돼서 집에 돌아왔구나. 암튼 또 생각난 김에 워드프로세서 셤 신청하고. 간만에 네이트온에서 친구들하고 대화 작렬해 주시고. 일찍 끌 생각이었는데 대화하는 걸 엄마가 보더니 재밌어해서 제법 길어졌다.
컴퓨터를 끄고 나오니 빗소리가 시원했다. 조금 설렜다. 잠이 안 와서, 책을 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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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두운님 탄신일 감축드리옵니다.
원래 야구 보러 목동 가려고 했는데 전날부터 속이 안 좋아서 관뒀다. 안 좋은거야 견딜만 한데 하루 밤 샐 거 생각하니 엄두가 안 나서. 확실히 몸이 노쇠했다. 이게 다 ㅇㅅㅊㅊ때문이다. 까먹고 원주에 하숙집 열쇠를 들고 와서, 등기로 부쳤다. 우체국 시원하고 좋더라. 혈압은 87에 48이었나. 이틀 연속으로 최고혈압은 80 미만, 최저혈압은 50 미만 기록. 저혈압인 게 왠지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심부담이 정상치 미만이어서(5900대) 이게 좀 걱정이 됐다. 저혈압이라도 나머지는 다 정상이었는데. 하지만 키는 좀 컸다. 고등학교 때 마지막으로 쟀을 때보다 1.2cm 자랐음. 이 속도면 중 2 이후로 매년 0.5~6cm 꾸준히 자라고 있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고. 그 때보다 고 3 때 4cm 컸으니까. 탁구슨생도 컸다고 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거기 키 재는 기계가 좀 크게 나오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리고 역시 탁구슨생과 탁구 크리. 컨디션이 나쁜 건 아니었는데 내리 다 져버려서, 전날에 이어 탕수육, 야구비, 다음 탁구비, 아이스크림을 사게 생겼다. 확실히 내가 못됐다고 느끼는 점은, 내가 지면 기분이 나빠진다는 거다… 관리가 안 될 정도는 아닌데 뭔가 내가 굳는 게 느껴지니까 상대방이 알아챌까봐 그게 좀 신경쓰인다. '삐진' 상태가 될까봐. 아마 어렸을 때의 자존심이 유지되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승부욕을 공부에 썼으면 참 좋을텐데 말이지. 하지만 탁구의 경우는 내가 좋아하는 데다 즐겁게 하는 거니까 더 지고 싶지 않은 거라고… 아무튼 삐지기 싫다. 삐지는 거 자체가 싫다기보단 상대방이 내가 삐졌다고 생각하는 그 상황이 싫은 거.
배스킨에서 아이스크림 사고, 엄마가 마늘하고 파 사오래서 6시쯤 설렁설렁 들어가는데, 탁구슨생을 집으로 데려가려고 무진 애를 썼으나 결과적으로 우리집 앞에서 돌아감. 자주 바래다주긴 하는데 내가 좀 우리집에 가자고 고집을 많이 부려서 미안했다.
음, 아니 미안한 건 둘째치고 퍼뜩 내가 왜 얘를 이렇게 집에 데려가고 싶어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내가 한 번 응석을 부리거나 고집을 부리면 끝이 없어서─예를 들어 초등학교 6학년 때 놀고 가자고 반 친구 ㅇㅅㅎ를 붙잡고 십수분동안 늘어졌던 기억은 그 미안함 때문에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데─ 상대방에게 폐가 되는 수준이다. 이건 좀 고민도 많이 하고 죽 썰을 풀어야 그나마 정리가 될 것 같은데, 지금 대강 생각하기론 탁구슨생이 어느 순간 내 울타리 안에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정도의 결론? 최근부터는 좀 짜증을 내기도 하고. 확실히 짜증을 표출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건 정말정말 탁구슨생에게 맘의 벽을 허물었다는 것 같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얘랑 연애할 것도 아니고. yh라든가 룸메님이라든가 크국에게는 내가 무언가(내가 원하는 바)를 이렇게 끈덕지게 조르는 법이 없었는데, 좀 다른 유형으로 벽을 허문 것 같아서 그게 두려운 걸지도. 그래서 좀 거리를 둬야겠다는 생각을 한 걸 보면, 난 참 인간관계에서 답이 없는 모양이다.
2
과외 때문에 서울. 겸사겸사 크국과 국립중앙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일찍 일어나 상경. 타이밍 좋게 이수역 열차칸에서 딱 만났다. 버스 타고 올라가는 동안 비도 오고 해도 나고, 날씨가 변덕이 죽 끓듯 했다. 차마고도전을 보려고 했던 것데 파라오와 미라전도 좀 땡겨서 티켓을 끊었다.
라고 쓰다보니 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 탁구 치러 가야지. 뿌우.
일상 포스팅은 이따 이어서★